
며칠 전, 아이와 저녁을 먹던 중 아이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엄마, 나 개근거지야.”
무심한 듯 내뱉은 그 한마디가 제 가슴을 세게 때렸습니다.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아이가 전하는 뜻은 분명했습니다. 학교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히 다녔지만, 해외 체험학습을 다녀온 친구들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였습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개근거지’라는 표현이 은근히 퍼지고 있습니다. 개근은 했지만, 아무런 경험도 없이 학교만 다닌 자신이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쓰는 말입니다.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워킹맘입니다. 출근 준비를 하며 방학 때 아이 도시락을 챙기고, 주말에는 밀린 살림과 학습지 확인으로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그런 제게 해외 체험학습은 현실적으로 먼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나는 왜 해외 안 가봤어?”라고 물을 때마다, 가슴 한편에서 작고 조용한 죄책감이 자라납니다.
이 글은 해외체험학습에 대한 부모, 전문가, 아이들의 시선을 통계와 실제 경험 중심으로 풀어낸 콘텐츠입니다. 아이의 성장과 비교, 기회의 격차,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부모의 시선: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이 아이가 더 많은 걸 보며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해외체험학습은 그런 바람을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최근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연평균 약 2만 6천 명의 초중고 학생이 해외 체험학습을 이유로 장기 결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3~6개월 단기 체류로 영어 환경을 경험시키거나 다른 문화권의 교육 방식을 체험시키려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워킹맘에게 해외체험학습은 이론상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선택지입니다. 직장이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장기간 가족이 함께 떠난다는 것은 대부분의 가정에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체험이 아이의 ‘스펙’처럼 소비되는 분위기가 부모들을 더 힘들게 합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다녀온 나라가 몇 개냐”, “어느 학교에 잠깐이라도 다녔느냐”가 대화의 기준이 되고, 해외 경험이 없는 아이는 자연스레 위축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아이는 우리가 하지 못한 선택 때문에 소외감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잘못한 걸까?’라는 자책이 밀려옵니다.
전문가의 시선: “경험이 교육이 되려면 구조와 맥락이 필요합니다”
해외체험학습은 분명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하지만 단순히 외국에 다녀온 것만으로 교육적 효과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경험은 곧 학습이 아니며, 경험이 학습이 되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적과 계획, 반성적 사고 과정이 필요합니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해외체험학습을 다녀온 초등학생 중 58.1%는 귀국 후 학업 스트레스를 다시 겪었고, 19.8%는 한국 학교 수업 방식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체류 기간이 짧을수록 언어 습득 효과나 문화 이해 수준도 제한적이며, 단순히 여행 성격이 강한 체험은 오히려 피로감과 교육 공백만 남길 수 있습니다. 즉, 해외체험학습이 ‘교육’이 되려면, 그 안에 아이의 주도적인 참여, 교육적 목표, 지속 가능한 피드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시선: “나는 열심히 다녔는데 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죠?”
아이들은 요즘 스스로를 비교하며 성장합니다. “나는 학교를 매일 다녔는데, 왜 다녀온 친구들만 주목받지?” 이런 생각은 초등 고학년부터 점차 강해지고, 중학생이 되면 상대적 박탈감이 깊어집니다. 2024년 5월, 중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8.6%가 ‘해외 체험을 다녀온 친구와 자신을 비교해 위축된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그 중 절반은 SNS 사진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다고 답했으며, ‘개근거지’라는 표현은 단순한 농담이 아닌 정서적 위축을 나타내는 일종의 자가 표현이었습니다. 아이는 ‘개근’이라는 성실함을 증명했지만, 경험이라는 또 다른 평가 기준 앞에서는 조용히 밀려나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결론 – 모든 경험은 교육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아이가 그 경험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해외체험학습은 선택할 수 있는 가정에게는 분명 의미 있는 기회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과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는 위험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선택이고,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워킹맘으로서 저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매주 도서관에 가고, 주말에 작은 전시를 보러 갑니다. 이런 일상 속의 경험도 충분히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거창한 체험이 아니더라도, 꾸준한 일상 안에서 배움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개근상 하나에도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가,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먼저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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